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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 절차, 누구나 처음 겪는 장례식

by 센스플로우 2023.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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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생각보다 더 많이 슬퍼서 마음이 아팠고
이제와 생각해보니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상당히 많았다는 것을 알게되었어요.
할아버지를 보내드리며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어서
할아버지는 마지막까지도 배움을 주고가시는구나 싶었습니다.

 


나보다 앞서 살았기에 모든 것을 더 많이 알고있을거라고 생각한 부모님이
할아버지가 돌아가심과 동시에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허둥지둥하는 모습에 사실 조금 놀랐습니다.
엄마와 이모, 삼촌 모두 60-70대인데
이런 나이의 분들에게도 처음이 있다면 그건 부모의 장례식이겠구나 싶었어요.
그렇게 손주의 입장에서 이번 장례식을 함께 치루면서
장례식 절차에 대해서도 알게되었고
생각보다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었구나 생각이 들어서 이번 글을 작성합니다.

 


토요일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장례식장에 빈 빈소가 없어서
하루 기다렸다가 일요일 아침에 할아버지를 빈소로 모실 수 있었어요.
그렇게 일요일부터 조문객이 왔고
월요일 입관, 화요일 발인을 하게 되었습니다.

장례식 절차

 

흔히들 하는 말 중에
결혼식은 부모 인맥,
장례식은 자식 인맥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번에 할아버지는 보내드리며 참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할아버지의 자식이 딸4에 아들1인데
할아버지 빈소에 하나둘씩 도착하는 화환들과 조기(사진의 깃발 같은 것)들이
반은 삼촌 앞으로, 반은 저희 아빠 앞으로 온 것들이었어요.

우리아빠 참 열심히 살았구나,
아빠가 누군가에게 보낸 만큼 이렇게 돌아오는구나 싶었습니다.
처음에는 화환도 너무 없고 조기도 별로 없어서
이모들끼리 아버지 가시는 길이 너무 허전한것 같다며
우리라도 하나씩 화환을 하자고 했는데,
저희 아빠가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고 아마 많이 들어올거라고 하셨는데..
정말 꾸준히 계속 들어오더라구요.

삼촌의 경우 부모상이기에 그럴 수 있다고해도
저희 아빠의 경우 장인어른상인데도
아빠의 지인분들이 많이도 보내주셨더라구요.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저도 지금부터라도 더 열심히 주변 관리 잘하면서 살아서
나중에 우리 부모님 가시는 길에 허전하지 않게 해드려야겠다는 다짐도 하게되었어요.

 

 

 

 

 

장례식을 치루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생기며 당황스러웠어서

이렇게 포스팅을 하게되었어요.

먼저,

사망진단서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는 고대병원에 계시다가 병원에서 더이상 해드릴 수 있는게 없다고 하여

요양병원으로 옮기신 후에 돌아가셨어요.

할아버지는 토요일에 돌아가셨는데,

요양병원에서는 직원들이 다 퇴근하여 서류를 뗄 수 없다고 하더라구요...

 

그렇게 다음날인 일요일에 외숙모가 사망진단서를 받으러 요양병원에 갔고

사망진단서를 받아서 장례식장에 제출하니,

주소가 달라서 사망진단서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하더라구요.

요양병원에서 할아버지의 주소를 현주소가 아닌 본적으로 잘못 적어놓았기 때문인데요.

외숙모는 본인이 확인을 못해서 일이 이렇게 되었다며 속상해하셨는데

사실 그 상황에 정신이 있을 상주가 어디있겠습니까.

요양병원에 전화하니 일요일이라 전화도 안받고..

 

월요일에 입관인데

사망진단서 없이는 입관을 진행할 수 없다는 말에 모두 멘붕이었습니다.

결국 월요일 아침(입관 당일) 요양병원 오픈시간에 맞추어 큰이모가 가셨고

주소를 바꾼 사망진단서를 받아서 사진으로 찍어보내주셨고

장례식장 측에서 우선 사진으로 확인했으니 입관을 진행하고

서류가 도착하면 바로 가져다 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입관을 시간에 맞춰 진행할 수 있었어요.

 

사망진단서
 요양병원에서 주말에 돌아가시면 서류떼기 어려울 수 있음
 병원에서 사망진단서를 떼서 이동하기(병원과 장례식장이 멀면 왔다갔다 힘들어요)
 사망진단서를 받으면 모든 정보 확인하기

 


또한
장례식을 치루는 동안에 생각보다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되었어요.
우선 빈소 앞에서 방명록과 조의금을 받는 사람이 1-2명 정도는 있어야하고
운구를 옮길 수 있는 남자 6명과, 사진을 들어야하는 남자 1명이 있어야합니다.

이 모두에서 상주는 제외됩니다.

사망진단서 이후로 두번째로 난감했을 때
입관을 할때였던것 같아요.


할아버지 입관을 해야하는데,
빈소를 아예 비울 수는 없고
그렇다고 가족 중에 누구를 남기자니 그 가족은 할아버지의 입관에 함께하지 못하니까
참 당황스러웠습니다.

또한 입관 중에는 빈소에서 조문을 하지 않는다고해요.
미리 알았다면 뭔가 조치를 취했을 텐데,
아무도 모르고 있었던 상황이라 어찌해야하나 고민을하다가
이른 시간이니 누가 조문을 올까 싶고
아직 어려서 입관을 지켜보기에는 힘들것 같은
초등학교 고학년인 조카(할아버지의 증손주)에게 빈소를 맡기고 가족들 모두 입관을 하러갔습니다.

저도 입관식이 처음이었는데,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보던 수의를 입은 할아버지의 모습과

너무 차가운 할아버지 손을 잡으며 마지막 인사를 전하면서도

지금 이 상황이 현실이 맞나 싶었습니다.

할아버지를 보내드려야 한다는 실감이 그제서야 나더라구요.

 


그렇게 입관식을 하고 다시 빈소로 내려오니..
8명의 조문객이 오셨더라구요.
다행히 듬직한 조카녀석이 조문객들에게 어른들은 모두 입관하러 가셨으니
식사를 먼저 하시라고 안내해드렸다고해요.
가족들 모두 이 녀석을 칭찬해주었답니다.

삼촌이 음식을 가장 비싼것으로 신청했다고해서
다른 가족들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렸는데,
할아버지께서 살아계실때 늘 하시던 말씀이
나중에 나 죽으면 내 장례식에 오는 분들에게는 꼭 최고 좋은 음식 대접하라고 하셨다며
음식은 가장 좋은 것으로 할거라고 하셔서
또 눈물이 주르륵.

우리 할아버지 정말 멋지시네.

그렇게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하루 하루 지나가고 발인 날이 되었어요.
세번째로 난감했을 때가 발인이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들 남자와
운구를 옮길 남자가 필요한데,
저희집이 손녀가 많은 집이다보니..
60-70대인 사위들이 들자니 버거울것 같고
장정들이 필요한데
사촌오빠가 두명뿐이라..

저희 남편을 포함한 형부들 모두 월차를 내어
손주 사위 셋을 포함해도 남자가 없어서 난감했습니다.

왜 영정사진은 남자가 들어야하며
왜 운구는 남자만 들어야하는 것일까.

우리가 깨자
이런거 필요없다
우리 외가 식구들만큼 가까이 살며 자주 보는 가족이 없는데
굳이 남자만 해야하는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다가도

우리 할아버지
아들 아들 그렇게 아들 좋아하셨는데
마지막 가시는 길에 남들과 다르게 하는 것은 아닌것 같아서

머리 굴려가며 어떻게하나 고민하다가
결국
입관때 할아버지 빈소를 지켜줬던 증손주가
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들고
사촌오빠 둘 + 손주 사위 셋 + 막내이모부 하나
이렇게 여섯이서 할아버지 운구를 들기로 했어요.

 

상조에 가입하면 직원들이 들어주기도 한다는데,

저희는 아무래도 가족이 하는게 제일 좋을 것 같았고

발인 전날 저녁에 이 사실을 알게되어 사람을 구할 시간도 없었어요.

 


조부상이라 회사에서 기껏해야 하루 쉴 수 있게 해주는데,
사촌오빠들과 우리 남편, 형부 모두
개인 월차쓰고 다 와줘서 너무 고마웠어요.
할아버지 마지막 가시는길 정말 든든하셨을 것 같아요.

그렇게 할아버지를 성당으로 모셔서
장례미사를 드리고
할아버지가 생전에 활동하셨던 요셉회 분들이 와주셨는데,
그분들을 보니 눈물이 또 핑..

98세까지도 정말 정정하셨던 우리 할아버지인데,
낙상으로 코로나로 고관절수술로 이렇게 가시니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화장터로 이동해
모두 오열하며 할아버지 보내드리고...
유골함에 잘 모셔서 시안추모공원으로 이동해 잘 모셨습니다.

이번 할아버지 장례식을 통하여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웠습니다.

할아버지는 상조에 가입이 안되어있으셨다는데
상조는 할아버지가 가입을 했어야하는지 자식이 해야하는지,
상조가 있으면 무엇이 달라지는지 등 미리 알아볼 필요를 느꼈습니다.

 

장례를 준비한다는 말이 이상할지라도,
아무리 황망하고 슬픈 와중이지만
부모님 마지막 보내드리는 길에 부족함 없이 해드리고싶은게 자식 마음이라
미리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서 기록해놓아요.

 


할아버지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할아버지라는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저희 가족들이 같은 동네 살며 잘 지낼 수 있었어요.
할머니와 70년을 사셨는데,
혼자 남은 할머니를 생각하면 너무 마음 아프지만
저희가 할머니께 더 잘하겠습니다.
그러니 할아버지께서도 그곳에서는 아프지 마시고
하느님 나라에서 행복하게 저희 지켜봐주세요.

친정에서 딸이 어디선가 꺼내온 옛 앨범에

젊은 날의 할아버지가 첫 돌을 맞은 저를 안고 계신 사진을 보았어요.

이렇게 제 모든 인생에는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감사한 것을 감사한 줄 모르고 살다가
이제와 감사인사드려 죄송하고
너무 감사한것들 뿐이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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